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콘스탄티노스 2세 (문단 편집) === 군주제 폐지 === [[그리스 군사정권]] 퇴진 이후 새로 들어선 카라만리스 총리의 과도 정부는 군사 정권의 왕정 폐지(헌법 개정)를 무효화했지만 그렇다고 1952년 제정된 민주헌법으로 복귀하지도 않으려고 했다. 이에 따라 1974년 12월 왕정 복고 국민 투표가 있었으나 콘스탄티노스 2세는 [[입국 금지]]된 상태로 TV연설로만 지지를 호소할 수 있었다. 결국 7:3으로 왕정 복고가 부결되면서, 콘스탄티노스 2세는 왕위를 되찾지 못했고, 75년 헌법이 제정되어 현 제3공화국 체제가 출범하게 된다. 1946년 국민 투표에서 7:3으로 왕정이 유지된 것과는 대조적. 그래서 여전히 [[입국 금지]]를 먹은 채 돌아오지 못하고[* 1981년 2월 어머니 프레데리카 왕비 장례식 참석으로 당일치기 방문을 했었고, 1993년 여름에 미초타키스 총리의 배려로 일가족과 휴양으로 방문한 적 있다.]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계속했고, 당시 정치인들로부터도 '멍청이', '암덩어리' 등의 비난을 들었다. 그는 결국 굴복하고 공화정을 인정했지만 그리스에서 그에 대한 여론은 굉장히 냉담해서 [[요르요스 파판드레우]] 2세 총리 시절인 [[1994년]]에는 아예 [[국적 박탈]]을 당한다. 당시 콘스탄티노스는 다른 유럽 왕들과 마찬가지로 성씨를 쓰지 않았는데[* 없는 건 아니다. 평소에는 쓰지 않고 공식적으로 이름을 써야 할 때도 쓰지 않는 것이다. 보통 가문 명이나 영지의 이름이 성으로 사용된다.] 그리스 정부에서 적법한 성씨가 없다는 이유로 그리스 국적을 부정한 것이다. 또한 왕실 재산과 관련해서도 그리스 정부와 소송을 벌였는데 그리스 정부는 "제대로 된 이름도 없는 사람이 뭔 소송이냐"면서 소송을 받아주지 않았다. 결국 그는 소송을 위해 Κωνσταντίνος της Ελλάδας(그리스의 콘스탄티노스)라는 이름을 등록했다. 그리스 법원에서는 그의 소송을 기각했으나, 콘스탄티노스 2세는 이에 굴하지 않고 [[유럽인권법원]]에 소송을 제기했고 오랜 소송 끝에 2000년에 그리스 내에 있는 자신의 재산을 인정받았다. 자산은 그리스 정부 소유로 인정하고 대신 그리스 정부가 보상금을 옛 왕가에 지급하는 방식이다. 그리스 정계는 이를 비웃었는데, 그가 [[탈세]]한 금액이 많다고...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1&aid=0000038906|기사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